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의 후반전이 반전이다
작성일 : 2026.03.31 13:19

인생 후반전에서 일생 반전을 일으키는 ‘절반의 철학’ 이 필요한 까닭은?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시대. 누구나 50이 된다. “40 대부터 인생 이모작을 준비해야 한다”고 지겹게 들었다. 전반 전은 비록 남을 위해 살아왔지만 후반전 만이라도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낡은 몸과 마 음 그대로의 나’에 머물러 있다.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는 이유 만으로 제2의 인생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맞이한 또는 곧 맞이할 50이라는 숫자는 늘 무겁게 막연하게 느끼는 나이다. 

나이는 나 이제부터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다는 깨달음 인데, 나는 언제부터 나를 깨닫는 각성과 결단의 시간을 맞이 할 수 있을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신통치 않은 성적표뿐 아니라 살아온 날만큼의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 는 막연한 부담감이 그저 감당되지 않는 게  문제다. 진정한 담 당자는 주어진 인생을 감당하는 사람이다. 나는 과연 오십 후 반전을 감당할 능력과 의지를 지니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문제없는 인생이 문제라고 하지만 가만히 생각만하 고 있다고 다가오는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리 만무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해야겠다. “견해는 언젠가 진부해지지만, 사실은 영원히 진부해지지 않는다”는 아이작 싱어 (Isaac Bashevis Singer)의 말을 기억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은 현실을 기반으로 지금 여기서의 삶이 양산하는 산물이다. 사실은 오로지 사실이 거주하는 현장에 몸이 개입되지 않고 서는 파악할 수 없는 진실의 재료다. 

100세 시대 삶에 관한 다 양한 주장과 견해는 내 몸을 관통하며 남긴 흔적 얼룩이 번역 된 언어가 아니다. 당연히 와닿지 않고 자주 듣다보니 남의 이 야기처럼 진부하게 들릴 뿐이다. 그런데 몸이나 정신은 전처 럼 팔팔하지 않고 문제는 체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 도 취하지 않고 언젠가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살아간 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살날은 더 길고, 지금까지 투자한 돈보다 앞으로 들어갈 돈도 더 많은데 언제까지 일 할 수 있을지 모르는 불안감은 엄연한 현실이자 사실이다. 내 인 생 2분의 1, 50세 이후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현 실에는 엄연한 ‘사실’이 꽈리를 틀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그렇다면 인생 전후반을 나누는 삶의 반환점에서 우리는 앞 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논어(論語)》〈위정편(爲政篇)〉 에 따르면 오십 세는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 지천명이다. 30세에 뜻을 세우는 이립(而立)을 지나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불혹(不惑)의 40세를 넘겼어도 여전히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더 많아지고 중심을 잡지 못 하고 마음이 흔들리는 일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십 세의 오 (五)는 나를 의미하는 오(吾)의 다른 이름이다. 지금까지 남 을 위해서 힘들게 살아온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내가 누구 인지를 깨닫고 나(悟)답게 살기 시작하는 시기가 바로 오십 이다. 단순한 숫자 오(五)가 나를 의미하는 오(吾)로 바뀌고 마침내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오(悟)로 바뀌는 일련의 과 정이 오십이 되면서 자유로운 나로 거듭나는 진정한 변신과 정이다.

 오리무중(五里霧中)했던 삶을 오색찬란(五色燦爛) 빛나게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이 바로 마지못해서 하던 일을 절반으로 줄이고 하지 않던 또는 하던 일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이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지금 여기서 실천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나의 ‘코나투스’나 ‘힘에의 의지’를 떨어뜨리 는 일은 아예 끊어버리거나 절반으로 줄이고 나를 살아있게 만들어주는 일은 두 배로 늘리는 것이다. 

절반의 철학이 필요한 네 가지 이유
절반의 철학은 인생 후반전에 일생 반전을 노린다. 절반의 철학은 인생 후반전에 나침반이 가리키는 진북을 향해 목적 의식과 소명을 갖고 진군하는 과정을 지원한다. 절반의 철 학은 본분을 다하는 삶을 지원하는 철학적 기반이다. 마지 막으로 절반의 철학은 줄임이 쓰임을 결정한다는 삶의 철학
을 구체적인 실천 덕목으로 권장하려는 의지를 천명한다. 


① 인생 후반전이 일생 반전이다
인생의 초반을 잘 못 시작했어도 우리는 그 끝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끄트머리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 는 이유다. 끝에 머리, 즉 시작이 존재한다는 놀라운 말이다. 모든 끝(End)에서 또 다른 시작이 이어진다(AND). ‘End’와 ‘End’ 사이에 언제나 ‘AND’가 살아간다. 끝과 끝 사이에 그 끝을 이어주는 접속사 그리고(AND)에는 언제나 인생 반전 을 꿈꾸는 절치부심이 살아간다. 인생의 중반을 넘어섰어도 만반의 준비로 반전을 시도하면 인생 후반전이나 종반전에 도 얼마든지 인생 역전 드라마를 쓸 수 있다. 시작은 미약하 였으나 진지한 실천을 반복하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생각 지도 못한 반전이 시작된다. 반전을 꿈꾸려면 우선 몸집을 가볍게 해야 된다. 그것이 바로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다. 후 반전에 반전을 노리는 사람은 우선 절반의 철학을 몸소 실 천해야 한다.
 

② ‘절반’ 속에 ‘나침반’이 살아간다
절반을 줄이면 어디로 가야 할지 인생의 나침반이 보이고, 두 배로 늘리면 무엇을 숭배하며 살아야 할지 인생의 보배 가 보이기 시작한다. 시간을 보면서 앞만 보고 달리던 시계 중심의 인생은 절반으로 줄이고 내가 어디로 가면 행복한 지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 내가 하면 행복한 일도 잡을 수 있 다 1). 내가 하면 행복한 일은 얼마나 빠른 시간에 일을 하고있는지 시계가 알려주지 않는다. 내가 꿈꾸는 설렘의 목적 지를 찾아가는 나침반이 인생의 진정한 동반자다. 나침반은 우선 하던 일을 줄이라고 속삭인다. 줄이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 늘려가면 늘어지는 인생을 살 수 있어도 늘 행복한 삶 은 만끽할 수 없다. 절반 속에 살아가는 나침반을 찾기 위해 서는 그 동안 마지못해서 늘 해오던 습관과 관습의 틀을 벗 어던지고 나에게 의미와 가치를 주지 않거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하는 모든 일들은 과감하게 끊어버려야 한다. 끊기 없는 끈기는 삶의 위기를 불러온다.

 ③ 분(分)에 넘치면 본분(本分)을 다 할 수 없다
절반으로 줄여야 하고 있는 일의 가치가 갑절 늘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는 일의 의미도 의미심장하 게 다가오면서 삶의 활력소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절반으로 줄이지 않으면 내 인생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위반이자 자 기 자신에 대한 심각한 배반이다. 절반으로 줄이지 않고 하 던 일을 두 배로 늘리기만 하는 일을 계속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이율배반(二律背反)일 수 있다. 절반의 철학을 몸소 실 천하는 사람들이 실천하면서 깨달은 삶의 노하우를 십시일 반(十匙一飯) 공유하면서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기 시작하면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피차일반(彼此一般)의 친 구이자 희망을 연대를 같이 만들어가는 인생의 도반임을 알 수 있다. 절반의 철학은 본분을 다하기 위해 절반으로 줄일 것을 먼저 선정한 다음 나머지 인생을 만끽함으로써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일은 두 배로 늘릴 것을 제안한다.

안 하던 일 또는 내가 하면 가치있고 행복해지는 일은 두 배 로 늘려야 삶의 축배를 올릴 수 있고, 지금보다 백배 더 재미 있게 살 수 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두 배로 더 늘리지 않으면 인생의 고배를 마실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지배당할 수 있다.


절반의 철학을 실천하면서 인생 후반전을 일생 반전으로 만들고 싶은가?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오십 이후는 ‘하던 일을 반으로 줄이고, 하고 있거 나 안 하던 일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 세상에 단 하나(1)밖 에 없는 유일한 내가 되는 비결은 하던 일을 절반(1/2)으로 줄이고, 하고 있거나 안 하던 일을 두(2) 배로 늘리는 노력을 반복한다. 절반으로 줄이면(÷2) 인생 후반전이 행복해지고 종반전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두 배로 늘리면(×2) 지금 보다 백배 더 재미있게 살 수 있다. 이분의 일(1/2)이 이(2) 를 만나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1)한 ‘나’, 소중한 나 가 된다. 나누기와 곱하기만 잘하면 성공하는 오십이 될 수 있다! 이걸 간단한 공식으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끊기 없는 끈기는 중년의 삶에 위기를 불러온다. 마지못해 늘 해오던 습관과 관습을 벗어던지고, 나에게 의미와 가치 를 주지 않거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하는 모든 일 들은 과감하게 끊어버려야 한다. 그러면 두 배 늘려야 할 것 들이 보인다. 이 놀라운 마법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불운’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우여곡절의 삶이었고 시행착오가 줄을 이어 발생했던 오 십 전반전의 삶이라고 해도 후반전에는 판단착오가 줄어들 고 파란만장한 삶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전반전을 살았던 삶의 이력(履歷)이 후반전의 경력 (經歷)을 만드는 원동력(原動力)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 래를 앞당겨 예측하기는 어렵다. 자신의 미래를 점을 봐서 알아내려고 하기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 축적한 직간접적 인 모든 경험의 점(點)을 연결해서 생긴 선(線)을 그리다 보면 내 삶의 면모(面貌)가 드러날 것이다. 시간의 깊이와 넓 이의 ‘점’이 희로애락을 겪으며 저마다의 인생 ‘곡선’을 만들 고, 파란만장한 곡선의 여정이 결국 한 사람의 ‘면모’를 만들 어나가는 것이다. 오십 후반전의 삶은 자신의 운명을 사랑 하고 미지의 세계로 몸을 던져 어제와 다른 우연이라는 선 물을 만나는 여행이다. 어떤 우연이 나와 마주칠지 예측할 수는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믿음이 전 제되어야 어제와 다른 앎이 생긴다는 점이다. “믿어야 앎이 생긴다”는 마이클 폴라니의 말처럼 다리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다리를 건너는 행동이 따른다. 마찬가지로 오십 후반전의 미래가 새로운 우연이라는 선물 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어야 어제와 다른 시작을 만날 수 있다. 한 번도 시작해보지 않은 출발의 설렘이 누구도 예측 할 수 없는 우연이라는 선물과 마주치게 만들어준다. 하던 일을 절반으로 줄이고 아예 하지 않거나 하고 있던 일을 두 배로 늘리는 일 자체가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설레는 미래를 맞이하겠다는 다짐이자 기대다. 절반으로 줄이고 두 배로 늘리는 그 생각과 행동 사이에서 이제껏 만나볼 수 없 었던 새로운 나를 탄생시키는 아름다운 순간이 살아간다.

중년은 역경이 경력이 되는 제2의 봄이다, ‘거품’을 버리고 ‘기품’있는 삶을 살고 싶은 후반전을 위하여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읽었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공자를 존경했지만 공자 에게 어떤 존경할 만한 점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야말로 난쟁이가 광대놀음을 구경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잘 한다고 소리치면 따라서 잘 한다고 소리 지르는 격이었다. 나이 오 십 이전의 나는 정말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었다. 앞의 개 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댔던 것이다. 만 약 남들이 짖는 까닭은 물어보면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따름이었다… 오호라! 나는 오늘에서야 우리 공 자를 이해했고 더 이상 예전처럼 따라 짖지는 않게 되었다. 예전의 난쟁이가 노년에 이르러 마침내 어른으로 성장한 것 이다(243쪽).” 이지(李贄)의 《속 분서(焚書)》3)에 나오는 말이다.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최선의 원리를 50세가 되면 안 다는 공자의 지천명(知天命)도 여전히 알지 못하고 우리는 오십을 맞이한다.우리 역시 남의 인생을 사느냐고 정신없이 달려간다. 정신나간 사람에서 정신 차린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전반전 인생과 뭔가 다르게 살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남의 인생을 쫓자 열심히 벤치마킹 (benchmarking)을 했지만 지금부터는 나의 인생을 살아 가기 위해 내가 걸어가면 길이 되는 패스 브레이킹(path breaking)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남보다 빠르게 살아가 려고 했다면 지금부터는 전보다 이르게 살아가야 한다. ‘빠 르게’는 속도전이지만 ‘이르게’는 의미전쟁이다. ‘빠른’ 사람 은 효율을 추구하지만 ‘이른’ 사람은 효과를 추구한다. 효율 은 정해진 길을 적은 입력을 투입, 더 많은 성과를 내려고 노 력하지만, 효과는 정해지지 않은 길을 걸어가더라도 보다 의미 있는 성취를 내려고 노력한다. ‘성과’는 결과 중심 사고 의 산물이지만 ‘성취’는 과정 중심의 부산물이다. 빨리 목표 를 달성해서 높은 성과를 만들어냈지만 성취감은 느끼지 못 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이 하던 방식을 열심히 쫓아가서 목표는 달성했지만 내 인생의 전정한 목적은 무엇인지, 나는 남의 삶이 아니라 나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 속에서 나의 관점과 시각으로 해석한 해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의 욕망을 쫓아 선망(羨望)하는 삶은 다 망한다는 사실 을 지금이라도 깨닫지 않으면 오십 후반의 인생은 더욱 절 망적이다. 선망은 시선이 자신을 향하지 않고 남을 향하면 서 그들의 성과와 비교하면서 발생하는 잘 못된 욕망이다. 지금까지는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멈출 수 없었지만 지금부 터는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멈추고 안으로 향하면서 선망 대신에 희망을 품기 시작하자. 선망은 경쟁심을 부추기지만 희망은 경쟁력을 부채질한다. 지금까지 남과 비교해서 조목 조목 따지는 삶을 살아왔다면 지금부터는 자신의 내면을 다 지면서 나를 중심에 두고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할 시점이다. 지금까지는 스케일이 큰 꿈도 꾸고 총론이 좋으면 찬성하는 추상적인 의미를 추구했지만 지금 부터는 스케일보다는 디테일, 총론보다는 각론, 추상명사를보통명사가 살아가는 동사의 삶으로 바꿔 살아갈 시점이다. 


고생 끝에 달콤한 미래가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이제 고생 끝에 통증밖에 오지 않는다는 고진통래(苦盡痛來)로 바꿔야 한다. 몸은 ‘여기’ 있으면서 마음은 아직 오지 않 은 ‘저기’로 향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인생 후반전이 반전”이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이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나이 들어서 통념을 먹고 푸념하면서 체념하기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이로운 세계를 심장 뛰는 마음으로 맞이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지금까지 남의 인생을 살기 위해 남이 정해놓은 규칙과 법에 맞춰 살아온 누추한 삶은 우선 버려야 한다. 

내 삶의 주인은 나다.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삶의 주인공이다.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는 이질적인 두 가지를 엮어내는 유추(類推)를 통해 경탄에 마지않는 경 이로운 기적이 일상이 되는 그런 삶을 살아갈 가능성을 찾 아가야 한다. 지금까지 사회가 요구하고 조직이 원하는 사 람, 집의 가장에게 덧씌워진 의무 이행자로 살아왔다면 지 금부터는 내 인생의 의미를 찾아 물건을 사기 위해 1억을 저 축하는 사람이 아니라 추억을 만들기 위해 경험을 사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갖춰야 할 5가지 조건을 이야기한 다. 일명 오성급 성공 모델이다. 여기에는 체력으로 단련하 는 야성, 지능을 능가하는 지성, 감동과 감탄의 원천인 감성, 심장뛰는 비전의 언어를 만드는 탄성, 마지막으로 믿을만한 인간관계를 만드는 정성이 포함된다.  


“가을은 모든 나뭇잎에 꽃이 피는 제2의 봄이다.” 알베르 까뮈의 명언이다. 이걸 중년의 삶에 대입해서 바꿔쓰면 더 멋진 명언이 탄생된다. “중년은 모든 역경이 경력이 되는 제 2의 봄이다.” 역경을 뒤집어 경력으로 만드는 중년은 또 다 른 인생이 시작되는 제2의 봄이다. 다만 그 봄을 준비하고 실천하는 사람에게만 다가가는 선물이다. 후반전에 반전을 일으키는 5성급 성공모델이 기대되지 않습니까? 


References

1. 절반이 나침반을 찾아간 까닭은? 절반에게 시계보다 나침반이 필요하기 때문. 시계제로의 중반  시계보다 나침반이 필요한 까닭을 절반에게 물어보다.
2. 미야노 마키코, 이소노 마호(지은이), 김영현(옮긴이)(2021).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서울: 다다서재(127쪽). 
3. 이지(李贄)(지음), 김혜경(옮김)(2007). 《속 분서(焚書)》. 서울: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