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의료의 역할이 이미 발현된 질병을 도려내고 치유하는 ‘사후 약방문’에 그쳤다면, 이제는 질환의 씨앗을먼저 찾아내고 평생의 건강 궤적을 올바른 방향으로 수정하는 ‘예방’이 핵심이다. 이 변화의 최전선에는 환자의 장기(Organ)가 아닌 인생(Life)을 통틀어 들여다보는 가정의학과가 있다.
대한가정의학회 대변인과 대한비만학회 교육이사 등 의료계의 굵직한 보직을 역임하며 학술과 임상을 넘나드는 행보를 보여온 강남을지대학교 김정환 병원장. 가정의학과 교수인 인터뷰 내내‘종합적인 관리’와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강조했다. 100세 시대를 앞둔 지금,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으며 어떤 지도를 들고 건강의망망대해를 항해해야 하는가. 강남을지대학교병원 김정환 병원장에게 그 해답을 물었다.<강지명 기자
소아비만의 그림자, 2030의 건강을 위협하다.
최근 의료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주저 없이 ‘비만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발병연령의 하향화’를 꼽았다. 과거 비만은 주로 중년 이후의문제였다. 40~50대가 되어 사회생활이 늘고 대사율이떨어지며 나타나는 ‘후천적’ 문제였던 셈이다. 그러나 지금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최근 10~20년 사이 2030 젊은 층에서 고혈압과 당뇨병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원인을 추적해보면 이미10대 시절, 즉 소아청소년기부터 비만했던 경우가 성인으로 이행된 것이 핵심입니다.”

김 병원장은 현대의 성인 비만이 사실상 ‘소아비만의 연장선’에 있다고 진단했다.
어릴 때부터 형성된 비만 세포와 생활 습관이 성인이 되자마자 만성질환의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제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인 보건 아젠다로 다뤄져야 할 시급한 사안임을 그는 강조했다.
고혈압·당뇨가 중년의 병이라는 공식은 깨졌다. 10대 때 이미 결정된 건강의 궤적을, 2030 청년들이 젊어서부터 무겁게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아청소년 비만은 그자체로도 문제이지만, 국가의 기간이 될 청년/중장년 시기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의료 필드에서는 이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이미 국가적인 아젠다로 부상했다는 것이 그의 평가였다.
현대인의 3대 착각: 맹신, 불신, 그리고 단편적 접근
건강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지만, 김 병원장이 보기에 정보의 홍수는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 그는 환자들이 범하는 결정적인 오류 세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과도한 맹신이다.
“홈쇼핑이나 SNS 광고가 의학적 정보와 뒤섞이면서 건기식이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둔갑했습니다. 건기식은 말 그대로‘식품’이지 ‘약’이 아닙니다. 약만큼의 효과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약으로 분류되었겠지요.” 그는 비싼 돈을 들여건기식에 매달리는 것보다, 그 돈으로 균형 잡힌 식단을구성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조언했다. 특히 일부제품의 경우는 건강 관련 프로그램들이 송출되는 전후로판매 방송을 배치하는 등, 적절하지 못한 행태를 보이고있음을 우려했다.“환자가 건기식에 관해 묻는다면, 저는 굳이 말리지 않습니다. 다만 권장하지도 않을 뿐입니다.”
둘째, 반대로 정작 먹어야 할 ‘약’에 대한 불신이다. “
인터넷에 떠도는 비전문가들의 글을 보고 고혈압이나 당뇨약 복용을 거부하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약이 몸에 해롭다면 애초에 출시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애초에의료 현장에서 사용되는 약은 1, 2, 3상 등 수많은 임상시험을 거쳐 까다롭게 검증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는것이다.
“부작용보다 약을 먹지 않아 발생하는 합병증의 위험이훨씬 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약물 치료에 대한 거부감이 높습니다.”
셋째, 건강관리를 ‘단편적 행위’로 보는 태도다.
“건강은종합 예술입니다. 운동 하나 열심히 한다고, 혹은 잠만잘 잔다고 유지되지 않습니다. 식습관, 음주, 수면, 스트레스 관리 등 여러 요인이 하모니를 이루어야 합니다. 담배는 피우면서 운동은 하니까 괜찮다는 식의 접근은 가
장 위험한 발상입니다.”그는 ‘없는 것보단 낫다는 말은, 그걸로 충분하다는 뜻이아니다’라고 강조했다.
AI 시대, 인간 의사만이 줄 수 있는 가치: ‘위로와 공감’
AI가 의료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김 병원장은 의외로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의료 지식의 팽창 속도가 인간의 인지 능력을 넘어섰기에, AI의도움 없이는 완벽에 가까운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워질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의사가 사라질 수 없는 이유’를 명확히 했다.“환자가 원하는 것은 최고의 치료뿐만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의사와 연결되고, 공감받으며, 위로받고 싶은 욕구가 존재합니다. 질병의 수치를 분석하는 것은 AI가 더잘하겠지만, 환자의 삶 전체를 이해하고 인간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은 오직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그는 ‘위로와 공감’이야말로 현대 의료에서 복원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고 덧붙였다.
“AI는 질병을 분석하지만, 의사는 삶을 어루만집니다. 치료의 마무리는 결국 인간 대 인간의 동질감에서 옵니다.”그는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는 항상 이 점을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비만 치료제 열풍, '기적의 주사'라는 환상을 경계하라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위고비, 마운자로 등 비만 주사 치료제에 대해서도 그는 냉철한 조언을 잊지 않았다. 김 병원장은 이들을 ‘혁신적인 치료제’라고 평가하면서도 한계를 명확히 짚었다.“비만 주사는 식욕을 억제하는 심플한 원리입니다. 하지만 주사를 끊는 순간 식욕은 돌아옵니다. 주사를 맞은 기간보다 훨씬 짧은 기간 내에 체중이 원상복귀되는 ‘요요현상’은 필연적입니다.” 심지어 김 병원장은 “실제 의료현장에서 주사에만 의존하는 경우, 요요 현상이 오지 않은 경우를 본적이 거의 없다”라고 경고했다. 그는 단순히 주사만 처방하는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며, 약물 치료 과정에서 근감소증을 예방하기 위한 단백질 섭취와근력 운동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최근 불거진 오남용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비만 치료를 오직 주사 하나로 끝내려는 ‘나이브(Naive)한 생각’이 오남용을 부릅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포괄적인 건강 관리’의 틀 안에서 봐야 하는 관점입니다. 수단의 일부로 치료제를 활용해야지, 주사만 맞으면 다 된다는 잘못된 믿음은 건강을 오히려 해칠 수 있습니다.”
100세 시대의 핵심 자산, '근육'을 저축하라
노년기 삶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으로 김 병원장은 ‘근육’을 꼽았다. 나이가 들며 성호르몬이 감소하면 근감소증(Sarcopenia)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김정환 병원장은 이를 멈출 수는 없지만, 늦추는 것은 분명 가능하다고귀띔했다.“특별한 운동 기구 없이도 일상에서 큰 근육(대근육)을쓰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제가 가장 추천하는 것은‘계단 오르기’입니다. 허리, 엉덩이, 허벅지의 중심 근육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심폐 기능 향상에도 탁월합니다.”식단에 있어서는 충분한 단백질 섭취를 강조했다. “나이가 들면 고기를 멀리하는 경향이 있는데, 치아가 좋지 않다면 계란, 생선, 콩, 두부 같은 부드러운 단백질원이라도 꾸준히 챙겨야 합니다. 근육은 노년의 가장 확실한 노후 연금입니다.”

의사는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치료한다
인터뷰 말미, 기자는 그에게 최근 학회 행사차 이동 중,비행기 내에서 발생한 응급환자를 구했던 일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김 병원장은 해당 해프닝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어느 의사라도 그 상황에서는 나섰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환자가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저희(학회 소속 의사들)는 스스로가 운이 좋았다 생각합니다. 환자가 발생했다면 의료인은 당연히 나서야 하는데, 마침 저희 능력으로 구할 수 있었던 상황이니까요.”
그의 의료 철학은 명쾌했다.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병을 가진 ‘사람’을 치료한다는 것이다. 환자를하나의 ‘질환’으로만 대하면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청진기를 들 때, 비로소 진정한 치유가 시작된다는 김정환병원장. 그의 진심 어린 조언은 건강의 갈림길에 선 현대인들에게 가장 명확한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었다.
김정환 병원장은
가정의학과 전공인 김정환 병원장은 2008년에 노원을지대병원에서 가정의학과 교수로 일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의정부을지대병원과 강남을지대병원 교수 등을 거쳤다. 올해 3월부터는 강남을지대병원 병원장으로 재임 중이다.학회 활동은 대한가정의학회 법제이사 및 총무의사 등을거쳐 대변인 및 홍보이사를 맡고 있다. 이 외에 대한비만학회에선 연수이사, 대사증후군 이사 등을 거쳐 교육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아울러 최근에는 대한여행의학회와 대한통합의학회 등에서도 활동중이다.

